Monday, September 4, 2017

65세가 넘으면서 나를 돌아보며

65세가 넘으면서 나를 돌아보며

누구든지 60이 넘으면 자신 인생을 뒤돌아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젊은 날로 상상의 날개를 달고 날아가 봅니다. 그리고 그 옛날 인생의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인생이 더 낳았지 않았을까 엉뚱한 후회와 몽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나는 본토 친척을 떠나 외국에 선교사로 살고자 하는, 어떻게 보면 쉽지 않은 선택을 하였기 때문에, 또는 결혼까지도 믿음의 결혼을 하는 선택을 하였기 때문에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제일 나은 선택이었는지 어리석은 후회도 할 때가 있습니다. 또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특히 그들이 선교사역에 많은 열매가 있고 노후도 잘 준비되었다면 모르지만, 홀로 한 가정이 외국의 외로운 곳에서 노후 대책도 잘 준비되지 않은 채 믿음을 지키고 있는 선교사님들을 생각할 때, 그들이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내가 한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나라고 인간적인 후회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쓸모없는 몽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선교사로 오지 않고 신학교에 들어갔다면 신학교 교수라도 하였을 터인데, 그때 지금의 아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면 알콩달콩하게 더 행복했지 않았을까 (오해하지 마십시오.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으므로), 아이들 막 자랄 때 더 가정에, 또는 자녀들에게 관심을 쏟았다면, 다른 선교지에 갔었다면, 다른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훌륭한 교회 지도자들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막연한 후회들이 손해의식과 어울려 꼬리를 물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번 한 선택을 바꿀 수가 없고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 속에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이나 실패한 사람이나 모두 겪는 경험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한국 기독교의 유명한 H 목사님도 자기 인생의 세 가지를 후회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나이에 이르면 자기연민의 골짜기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늙으면 분노 조절이 잘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대개 나는 적어도 이 나이에 이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하는데라고 현재 자신의 모습을 높여 생각하는 과대망상적 요소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는 크게 작게 그런 요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현실을 쳐다볼 때 자신에 대해 분노하게 됩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거나 자신의 가족까지도 무시하게 되면 더욱 감정의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감정의 골짜기에 빠질 때 다른 결정을 했다면 더 좋은 인생을 살지 않았겠냐고 망상에 빠지기 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성취욕이나 꿈과 야심이 많았던 사람에게는 그런 망상과 후회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라는 시는 인간의 이러한 미묘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지 않은

로버트 로스트

노란 속에 길이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길을 한꺼번에 갈 없는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
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리고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아름답
아마
은 이유가 있는 길을,
우거지고 지 않았기에;
말하자면, 자취로 닳은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혀있었다.
아,
길은 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속 길로 이어지는 기에
과연 여기 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모든 것이 라졌다고.

The Road Not Taken

by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이 시처럼 오해되고 있는 시도 없다고 합니다. 보통 이 시를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고 자기계발의 교훈으로 종종 오용되고 있는 시다고 합니다. (이 시의 해석에 대해서  http://news.joins.com/article/19349774를 참조하십시오) 이 시에서 시인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라도 먼 훗날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았지 않았겠냐고 후회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시인의 말대로 인간은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인생의 여행자이고, 가지 않았던 길이 더 좋게 보이는 인간적 착각 때문입니다.

아마 그러한 인간적 착시현상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다른 결정을 했다면 우리 인생이 더 나았지 않았겠냐고 어리석은 후회를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프로스트의 시처럼 우리는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한 길만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실존의 그러한 진실 때문에 우리 선택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또는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떠하든지 지금 그 선택을 후회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는 것입니다. 앞에 소개한 H 목사님도 과거의 몇 가지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만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이전과 다른 선택을 택할지 모르겠다. 모르는 일이다. 두 번 살아야 알 수 있는 건데, 삶은 두 번 주어지지 않으니까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생을 결코 두 번 살 수 없기 때문에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고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인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 없이 논리적으로 생각하여도 이러할진대, 여기에 하나님의 차원을 더하여 생각한다면, 즉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결정 속에 하나님의 선한 섭리가 함께 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지난날을 후회한다는 것은 신앙적이지도 아니 하며 지혜로운 일도 아닌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실수와 올바르지 않은 선택에도 불구하고, 즉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였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즉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길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며 가시적 열매가 없는 것에 한탄하거나, 내 인생을 하나도 안 풀리고 꽈배기처럼 꼬이고 꼬였다고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자기 배우자나 자식을 한탄하는 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옳지 않은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나의 배우자, 자녀, 사역, 내가 사는 곳 모두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옳은 선택은 예수님을 믿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의 모든 선택은 예수님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또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온 세월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보너스입니다. 그래서 비록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예수님이 나의 인생에 있다는 것 하나만이라도 우리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끝날 때 우리는 영원하신 예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그것처럼 성공한 삶이 어디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나의 인생이 어떠하였을지라도, 나의 존재 의미는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나의 인생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나의 인생에 대한 나의 판단이나 남의 판단은 의미가 없는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인생, 지난날을 후회하거나, 나를 판단하며 살지 않고자 합니다. 나의 인생의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나에게 구원, 영생, 승리, 부활,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주시는, 이 좋으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살고자 합니다. 나의 인생의 껍데기와 실패, 그리고 모든 것마저 사랑하면서 만입니다.

나오미의 한탄

한번 잘 살려고 건너간 모압 땅에서
나는 남편도 잃고
두 아들도 잃고
모든 것을 잃고
내 고향 베들레험에
빈털터리로 돌아왔네.
더는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라.
내 인생은 빈껍데기가 되었어.
실패한 인생.
비참한 인생.
자녀도 잃고
손자들도 없고
집과 땅도 없고
내가 가진 것이란
늙어빠진 몸뚱이와
나를 따라온 이방 며느리뿐이야.
희망이 눈곱 마치도 없는 나의 인생.
이제 나를 실패작이라고 불러다오.

나오미의 환희

보리 추수할 때가 되었는데
우린 먹을 것이 없었네.
며느리 룻이 이삭을 주우려 들판에 나갔어.
그런데 웬일인가. 그 날 밤에
며느리가 곡식 한 보따리를 가지고 나타났네.
어찌 된 연고인지 물었네.
며느리 말에 보아스라는 말이 떨어졌을 때
나의 마음에 모든 어두움이 사라지며
희망의 빛줄기가 내 인생 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네.

보아스.
그는 나의 친척이요,
나의 기업을 무를 구속자가 아닌가?
, 나는 깜빡 잊고 있었네.
나에게 구속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아스.
나의 친척, 구속자.
그는 장차 올 메시아의 표상.
삶의 실패를 만회케 하실 구속자.
삶의 의미를 새롭게 하실 구속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은 증거.
나의 인생이 실패일 수가 없다는 증거.
그 구속자가 내게 있었어.
그 구속자가 내게 있었어.
나 이제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어도
내게 구속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리.

나 이제
기쁨을,
보람을,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거야.
가지고 살 수 있는 거야.
내게 구속자가 있으므로.
내게 구속자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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