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16, 2017

"아코디아"에서 온 어느 선교사 이야기

아프리카에 있는 아코디아라는 나라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 기독교가 번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코디아나라의 교회들은 세계선교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나 아코디아는 빈민국이므로 외국에 나갈 길이 없었다. 다만 한국이라는 나라가 경제가 발전하면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빈민국에서 오는 이주 노동자들을 많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코디아의 사람 중에 몇 명은 이미 한국으로 이주 노동자로 가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아코다아수도에 위치하였던 카푸차 교회의 절실로니 목사님은 이 케이스가 한국에 선교사로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절실로니 목사님은 자기 교회에 다니고 있던 여호르게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몸도 건강하고, 믿음도 신실하였다. 그리고 가난한 아코디아에서 대학을 나온 몇몇 되지 않은 엘리트에 속하고 있는 사실이 맘에 들었다. 딸이 있으면, 사위라도 삼으려고 했는데, 아들만 두고 있는지라 생각을 접었다. 여호르게는 대학을 갓 졸업하였지만, 일자리가 별로 없어 취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절실로니 목사님은 여호르게가 한국 비자만 받는다면 선교사로 보내고자 기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호르게에게 한국 대사관에 가서 이주 노동자 이민을 신청해 보라고 권고하였다. 목사님의 기도 응답이었지는 아닌지는 모르지만, 여호르게는 하늘의 별 따게 힘들다는 한국 취업 비자를 받았다. 여호르게는 한국 비자는 받는 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를 복음의 사자로 보내소서!” 그리고 마침내 5월 어느 날씨 좋은 날 카푸차 교회에서 여호르게를 한국으로 평신도 선교사(tent-maker missionary)로 파송하는 파송 예배를 눈물과 감사와 기도로 드렸다. 여호르게가 한국으로 떠나는 날, “아코디아수도에 위치한 김포차 공항에 여호르게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해주고자 카푸차 교회의 많은 교인이 참석하였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3년 안에 한국을 복음화하고 돌아오겠다고 자신의 파송 소감을 교인들 앞에서 나눴다. 드디어 세계선교의 부푼 꿈을 안고 여호르게 선교사는 비행기 트랩을 밟았다.

비행기 시간이 20시간이 넘는 긴 여정 끝에 여호르게 선교사는 마침내 인천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미 한국에서 일을 하는 아코디아지인들과 연락한 관계로 그들이 공항에 마중 나왔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인천 공항에 도착할 때 한국을 복음으로 정복하고자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하였다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니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가 올라가자!"라고 외친 것처럼, 여호르게 선교사는 인천 공항 터미널에서 서투른 한국말로 크게 한국은 내 밥이다고 소리를 쳤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피부가 검은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여호르게 선교사는 그런 것에 괘의치 않았다.

안산 공장 지대의 월세방을 지인들이 얻어 놓은지라 여호르게 선교사는 그곳에 짐을 풀었다. 벽에는 곰팡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고, 메케한 냄새가 진동하는 반지하 방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면 모 공장에서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일이라고 하지만 공장 이곳저곳과 화장실을 청소하는 허드렛일이었다. 그러나 여호르게 선교사는 그런 것에 괘념치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복음의 전권대사요, 복음의 사자가 아닌가? 누가 인정해주지 않고 무시해도 다 괜찮았다. 이런 누추한 환경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드렸다. 아직 일을 시작하려면 일주일이 남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은 복음을 전하러 한국에 왔기 때문에 내일부터 복음을 전하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여호르게 선교사는 젊은이들이야말로 장차 기독교의 미래이므로 먼저 젊은이들을 선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모모대학을 방문하여 한 학생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다가가 전도하고자 하니, 많은 학생이 이상한 눈초리로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어렵게 한 학생과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학생은 여호르게 선교사의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여호르게 선교사의 떠듬떠듬하는 말을 조금 이해하는 것 같았다. 학생은 저 교회 다니는데요. 그런데 이곳에 교회도 많고 신학교도 많은데 왜 이곳에 선교사로 오셨어요?”라고 따지듯이 묻는 것이었다. “, 한국에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한국에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서투른 한국말로 떠듬떠듬 대답하였다. 그 학생은 여호르게 선교사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교실로 향해 들어갔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실망이 많았지만. 주님도 거절을 당하셨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를 받았다. 또 다른 학생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학생이 여호르게 선교사의 서투른 한국말을 열심히 듣고 난 후 여호르게 선교사와 성경공부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자신의 집 주소를 주고 일주일 후 토요일 점심때 자신의 집에서 성경을 공부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아코디아" 요리도 소개해주기로 하였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자기의 집으로 오는 내내 마음속으로 할렐루야를 외쳤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여호르게 선교사는 사실 아코디아에서는 일류 엘리트였다. 그러나 선교사로 오기 위하여 한국에 이주 노동자로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를 단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피부가 검은 이주 노동자로만 여기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같은 외국 사람이라도 미국이나 영국에서 온 영어교사는 대접이 다른 것 같았다. 공장장도 껌둥이, 이리 와 이것 좀 청소해라고 조금 무시하는 말투로 자신을 상대하였다. 멸시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그러나 주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을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오늘은 그 학생이 성경 공부하러 자기 집을 찾아오는 날이었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오늘이 의미심장한 날이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정식으로 전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벽은 천으로 가리고, 방을 대충 정리하였다. 밥상을 성경공부를 할 책상으로 응급으로 준비하였다. 그리고 학생에게 약속한 아코디아음식을 자기 나름 준비하였다.

시계를 몇 번씩 보았다. 드디어 학생이 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학생은 이런 누추한 집이 처음이었는가 보다. 표시는 않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여호르게 선교사는 자신이 무슨 죄나 지었는 것처럼 가슴이 덜컹하였다. 그는 다시 한번 마구간에 태어나신 주님을 생각하였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먼저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점심을 상에 펼쳤다. 가난한 형편에서 상당한 돈을 지급하여 준비한 점심이었다. “아코디아의 주 요리인 아코불코개”, “아코퇸짱찌과아코김치모를 바나바 잎으로 요리한 밥과 함께 내놓았다. 학생은 그리 좋아하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먹어보다가 음식이 맞지 않는지 먹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지 코를 쿵쿵거렸다. 그리고 어디서 똥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여호르게 선교사는 무안하였다. 또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빨리 편의점에 가서 사과 주스를 하나 사 왔다.

점심 후 드디어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요한복음 3장을 공부하였다. 서투른 한국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거듭납니다고 전하였다. 학생은 여호르게 선교사가 말하는 한국말이 아코디아악센트가 끼어 있기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귀를 쫄깃하고 듣는 체하는 것이 역력하게 보였다. 그러나 여호르게 선교사는 서투른 한국어이지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열심히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

한 시간 후, 학생은 바쁜 일이 많기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성경공부를 마무리하고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학생은 자기 일정을 보고 전화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일주일, 이 주일이 지나도 학생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이 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중년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엉터리 번호를 준 것이었다. 왜 틀린 번호를 주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고,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괘씸한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배척을 당한 주님을 생각하고 위로를 받았다.

다시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또 캠퍼스에 나갔다. 많은 학생이 전번과 같이 피하였다. 그런데 벤치에 홀로 앉아 멍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한 학생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서투른 한국말로 말을 건넸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지 물었다. 그러자 학생은 자신은 하나님을 원망한다고 하였다. 자신이 10살 때 부모는 이혼하고 엄마는 재혼하였는데, 자신은 지금까지 아버지와 새엄마와 살고 있다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대기업에 일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말하였다. 자기 아빠는 대형교회 장로라는 것도 말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집에 돌아갈 때마다, 외로움이 몰려온다고 하였다. 사실 여호르게 선교사는 그 학생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일반적으로 속사포로 쏟아놓는 넋두리를 대강만 이해하였다. 그가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님은 당신과 같은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며, 성경에 당신 인생 문제의 모든 해답이 있다고 말을 하였다. 학생은 여호르게 선교사의 어설픈 한국말을 계속해서 들었다. 한 시간쯤 흐른 후 여호르게 선교사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학생은 항상 캠퍼스 이 자리에 오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하였다. 여호르게 선교사는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날이면 캠퍼스에서 그 학생을 만났다. 기적이 일어났다. 학생은 여호르게 선교사가 하는 말은 스펀지 같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여호르게 선교사는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새롭게 체험하였다. 그렇게 그 학생하고 만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그 학생의 아버지가 여호르게 선교사를 찾아왔다. 그리고 여호르게 선교사를 보자마자 멱살을 잡더니 소리를 쳤다. , 아프리카 검둥이, 네가 무슨 선교사야. 미국이나 영국에서 오는 사람이 선교사지, 너희 나라같이 가난한 나라가 뭘 가르쳐 줄 것이 있다고 한국에 선교사로 와. 너 혹시 한국에 살고자 온 거지. 한국에 교회도 많고, 신학교도 많아. 내가 교회 장론데, 너 이상하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 같아. 너 우리 아들에게서 손 떼. 너 혹시 이단아냐. 너희 나라로 돌아가서 복음 전해. 한국은 너 같은 선교사 필요가 없어.”

자기는 다만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고자 한국에 왔지만, 한국 사람은 자신을 선교사라고 생각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한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서양 사람이 한국에 선교사로 오는 것이지, 왜 아프리카 사람이 한국으로 선교사로 왔는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선진국 사람이 후진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는 사람이 선교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복음은 선진국 사람만 전하라는 법이 성경에 쓰였는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은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법이 성경에 어디 쓰여 있다는 말인가? 사도 바울도 식민지 유대 사람으로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노예나 하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지 않은가? 한국 사람은 복음이 필요한 죄인이 아니다는 말인가? 한국에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수두룩한데적어도 기독교인이면 자신을 이해할 줄 알았는데...후진국 사람이 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는 말인가? 여호르게 선교사의 가슴에서 알지 못하는 서글픔과 분노가 용서리 쳤다. 그날 밤 여호르게 선교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눈에는 단지 자신을 형편없는 외국 이주 노동자로만 보는 것 같았다. 여호르게 선교사 눈에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다.

다음 날 아침, 여호르게 선교사는 누가복음 15장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자신이 한국에 온 것도 한 명의 죄인이라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과 계획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한국에 보내신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이 알아주지 않든, 복음을 거절하든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영접한다면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멸시와 무시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때가 있거나 없거나 꾸준히 복음을 전하길 원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이 어젯밤 감상적으로 된 것을 회개하였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 자신을 후진국 백성으로 생각하던, 또는 선진국 한국으로 복음을 전하러 온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던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보내셨는데, 누가 토를 달 수 있단 말인가? 복음의 사자로서 굳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깨닫게 되었다. 



: 물론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그러나 미주나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 본토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한국 선교사님들의 고충을 타자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썼습니다. 과부 사정은 과부만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교사님들의 눈물과 아픔을 다 아시리고 믿습니다. 이 글을 언어 장벽, 문화 장벽, 인종 차별의 벽, 생활고를 극복하면서 눈물과 기도로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수고하신 모든 선교사님께 바칩니다.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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