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14, 2017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예레미야 29:11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가끔 내게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는가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획기적인 일은 일어나지 아니하고, 복음사역을 하는 일상생활을 계속하는 가운데 수고한 만큼 진척을 보지 못할 , 미래와 소망을 찾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또한,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인기 있는 사람들을 우상처럼 따르지만, 예수님을 믿고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 신자들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이러할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축복인가 회의가 때가 있습니다. 신경이 예민하고 생각이 있는 신자들은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냉소적으로 되거나, 과연 자기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킬 있는지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신자들은 적당히 믿으면서 자기 유익과 쾌락을 좇아 살곤 합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대답은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을 위한 아주 놀라운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29:11 개역개정)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Jer. 29:11 NIV)

먼저 오늘 말씀의 배경을 잠깐 살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스르제국에 의해 주전 722년에 망하고 남쪽 유대왕국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바벨론에 의하여 주전 586년에 망하였습니다. 이미 멸망하기 주전 605 바벨론 느브갓네살은 왕족이나 다니엘을 포함한 유망한 청년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주전 597년과 586 있었던 바벨론 포로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전 597년에 있었던 포로 사건을 배경으로 깔고 있습니다. 그때 여호아긴 왕과 왕비 그리고 유능한 기술자들이 바벨론에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중에 바벨론이 멸망하고 포로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8-9, 15, 20-23, 그리고 24-32절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끌려온 유다 포로들을 구원하실 것을 자신들에게 예언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분명히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던 바벨론에 있던 유다 포로들에게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은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겠읍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데. 후면 고국에 돌아갈 있데.” 그들의 가슴에 소망과 기대감에 벅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경고는 무엇이었습니까? 8절과 9절을 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포로 생활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때까지 바벨론에 정착하여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바벨론을 위해 기도도 하면서 그곳에 뿌리를 내려라.” 유대인 포로들에게는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 중에는 고국에 돌아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바벨론 이방 땅에서 죽는 사람도 있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는커녕 후에는 유대 나라가 완전히 망한다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기 어려웠던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예레미야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27-28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좌절된 것은 없는 같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직장을 얻기 위해 15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짧은 기간도 어떤 때는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의 문제가 금방 쉽게 해결되는 길을 찾고자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와 다르기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70년의 포로 기간은 길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포로 가운데는 언제 터널을 지나 끝을 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14절을 의하면 그들이 정말로 알아야 했던 것은 그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데려가게 하신 분은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아니었고 하나님이셨다는 , 그리고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케 하시는 분도 느브갓네살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뒤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달어야 했던 것은 막강한 강대국의 뒤에서 자기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주관자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을 움직이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대적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계획까지도 바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의 교만까지도 사용하여서 그의 계획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인간의 죄악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킬 없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죄악까지도 그의 계획을 이루시는 사용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았지만 하나님을 그것을 통해 십자가의 구원을 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없이는 참새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역사를 쓰고 있는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장기의 마와 포같이 사용하셔서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래서 J. I. Packer 역사는 사실상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포로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향한 계획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계획은 그들을 망하게 하거나 해되게 하는 계획이 아니라 그들을 번성케 하고 미래와 소망을 주는 계획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려운 포로 생활의 현실을 누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놀라운 계획을 세우고 계시고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강대국 바벨론의 부귀와 권세를 , 하나님이라도 대세는 바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 포로들이 그들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강대국 바벨론도 좌절시킬 없는 아주 확실한 계획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여러분, 당신께서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의 상상을 초월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놀라운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움직이고 계시다는 것을 아십니까? 가끔 우리의 현실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응답을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매일 매일 똑같은 문제로 씨름하는 일상에 씨름할 때도 있습니다. 과연 나에게 미래와 소망이 있는가? 죄악 많은 세상은 미래가 있는가 고민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이 하시는 사역이 진척이 과연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은 하고 있는지 의심이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것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당신의 계획을 완벽하게 이루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그럴 일이 가능한가 의심할지라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 하고 싶은 것은 계획은하나님 계획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사라지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당신을 망하게 하거나 해하게 하는 계획이 아니라 미래와 소망이 가득한 아주 놀라운 계획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을 믿어지기가 어렸지만, 그리고 비록 우리가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을 통하여 놀라운 계획을 우리 안에 이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의 상속자요 영광의 나라에 살기에 합당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역경과 고난을 통하여 당신의 놀라운 계획을  우리 안에 이루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이 멀어 보지는 못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위대한 계획을 당신 인생 가운데 하나씩 하나씩 차금 차금 이루고 계십니다. 그 계획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도록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계획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 신자는 위대한 미래가 있고 놀라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 속담에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어도 끝이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All’s well that ends well.)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영광스러운 미래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광스러운 소망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그마한 역경에도 실망하고 좌절하거나 눈앞에 유익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 인간이 됩니다. 유대 포로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이 그들의 포로의 삶을 하나님 관점에서 보지 하고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말에 솔깃하였다면 당분간 기분이 좋고 맘이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런 거짓된 안목으로 미래를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당장 후를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굳게 의지하였던 예언이 거짓으로 판명이 났을 그들의 실망은 하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획기적인 일이 없나 이곳저곳 신통하다는 사람들의 부흥회에 참석하거나 책을 사보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관은 가진 사람은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과 함께하시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보다 미래의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묵묵히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삽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그것을 Coram Deo (Living before the face of God)라는 라틴어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와 삶의 주관자이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요셉은 좋은 예입니다. 그는 보딧발의 노예로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의심치 않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고난과 유혹을 극복할 있는 내면의 힘의 근원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의 인생을 다시 한번 봅시다.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어떤 거대한 일이 삶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의 삶이 일어나고 있어도, 또는 현실이 몹시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계획은 미래와 소망을 주는 아주 놀라운 계획이라는 것을 믿고 확신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 가운데서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3 절을 보면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은 비록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것을 멀리 보고 환영하며 믿음의 순례자로 살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매일 아침마다 우리의 영혼에 말하십시다. 나의 미래와 소망을 놀라운 것이다고. 아무리 현실이 어렵더라도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이루시고 있는 것을 굳게 붙듭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미래와 소망이 있으므로 기죽지 말고 꿈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갑시다. 그리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미래와 소망을 주신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묵묵히 그를 섬기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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